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쑨원 vs 위안스카이

잡학공부

by haijun93 2016. 9. 26.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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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스카이


22세 때 양부의 친구

우창칭 휘하에 들어가 군인의 길을 걷기 시작

청나라 거물 정치가 이홍장의 참모


1882년 조선에서 임오군란이 일어나자 청이 파견한 군대와 함께 조선에 입국


1884년 12월 4일 갑신정변 발발 이후

군대를 이끌고 주동자 전격 진압


'주차조선총리교섭통상사의'등극, 

조선 내정에 간섭



쑨원


2년간 개업의로 활동하다 혁명에 뜻을 두고

반청운동 가담


1895년 10월, 광저우에서 계획한 

무장봉기가 밀고로 무산된 이후 

해외망명생활 본격화



생의 전환점이 된 해외생활


조선에서 12년간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리고

1894년 청일전쟁 수일 전 귀국


열강의 각축 속에 

갖은 책략이 난무하던 조선에서

권력의 속성 체화


망명생활 동안

민주주주의에 대한 신념과 

서구적 가치관 학습


청나라로 돌아온 위안스카이


1898년 청 황제 광서제와 캉유웨이,

무술변법(변법자강운동) 시도


서양식 정치 제도를 도입해 나라를 근대화하려는

청나라 말 정치, 사회제도 개혁 운동


서태후에게 밀고해 변법을 무산시키고

총애를 얻어 승승장구한 위안스카이


1908년 서태후 사후

푸이를 섭정하던 순친왕의 미움을 사

모든 직무에서 해임, 낙향


우창봉기와 신해혁명


1911.10.11.

우창에서 무장봉기 발발


청조가 철도 국유화를 시도하자

열강에 빼앗긴 이권을 되찾으려 했던

민중들이 거세게 반발


우창봉기 이후 40여일 사이에 

17개 성이 청조로부터 독립 선언


1911.12.2.

난징 점령 후

임시정부를 수립한 혁명군,

청나라를 무너뜨리고 중화민국 성립 

 -> 미국에 있던 쑨원 급히 귀국


1912.1.1.

 쑨원, 혁명정부 대총통 취임


다시 살아난 위안스카이


청조, 혁명군과 맞서기 위해 

위안스카이를 내각총리대신으로 임명

-

진압군 사령관이 된 위안스카이,

군대를 이끌고 한커우 점령

갑자기 베이징으로 진격해

청나라 군권을 장악한 후

쑨원과 막후협약 진행


마주 앉은 두 사람


청조를 설득해 황제를 퇴위시키고 

임시정부에 권력을 넘기면

대총통 자리를 양보하겠다

- 쑨원


1912.2.12.


선통제 푸이, 퇴위 발표


대총통 자리를 넘겨받은 위안스카이,

정권 장악 후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

국회와 국무원 해산,

중화제국 대황제 등극(1915.12월)


일본에서 망명 중이던 쑨원,

소식을 듣고 대대적인 무력 봉기 지원

-

거센 저항에 봉착한 위안스카이,

80일 만에 황제자리에서 내려와

쑨원과 ㅏ마지막 협상 시도


총통직 복귀를 희망했지만 거부되고

요독증 발병 한 달 만에 사망

1916.6.6.


1921.5월

중화민국 총통에 취임한 쑨원,

1925년 간암으로 사망



혁명의 꿈 vs 권력을 향한 탐욕


살아생전 영화를 누리지 못한 쑨원

- 중국의 국부로 추앙


모든 것을 손에 넣었던 위안스카이

- 역사에서 지워진 존재


혁명가의 꿈은

누군가 고귀한 뜻을 이어가지만

탐욕스런 권력의 꿈은

허망하게 스러질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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